새해를 맞아 첫 번째 맞이하는 십이지(十二支)의 날에는 그 동물들의 속성이나 기호에 맞는 행사가 이루어진다. 첫째 말남인 상오일(上午日)에는 말을 잘 거두어 먹인다. 말에게 야채를 삶아 콩과 섞어서 주고, 마제를 지내거나 고사를 지낸다. 한편 밭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외양간에 갖다 놓고, 신에게 기도하여 말의 건강을 빈다.
사람들은 근신을 하였으며, 우물에서 물을 퍼내지 않았다. 한편 이 날은 장을 담그면 좋다고 하며, 어촌에서는 배의 첫 번째 시동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나무를 말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채색비단으로 꾸며서 약마희(躍馬戱)를 행하기도 하였다.
같은 말날 중에서도 무오일(戊午日)은 무(戊)와 무(茂)의 음이 같아서 말이 잘 자라고 번식도 잘한다고 여겼으며, 병오일(丙午日)은 병(丙)과 병(病)의 음이 같아서 병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불길하게 여겨서 금기하는 날이다. 그리고 10월의 말날에도 팥떡이나 팥죽을 마구간 앞에 차리고 무병을 빌기도 한다.
한편 정호에 행하는 윷놀이에서 ‘모’는 말(馬)에 해당된다. 따라서 가장 크고 놓은 동물이란 의미를 지닌다. 술에 사마주(四馬酒)가 있는데, 이것은 말날과 관계가 있다. 즉 정월 말날에 술을 담가, 12월 후의 둘째 말날, 24일 후의 셋째 말날, 36일 후의 넷째 말날에 각각 덧술을 해서 빚는다.
4말날, 곧 4오일(午日)에 걸쳐서 담근 술을 다시 독에 담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3월에 마시게 된다. 이것은 말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곧 말은 가축중에서 상위의 동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이날은 담는 술은 가장 귀한 술로 여겼다.
음력 8월이 되면 사료로 쓰기 위해 풀베기를 한 다음에, 산야에 나가 말똥줍기를한다. 말은 초식을 하기 때문에 똥에 섬유질이 많다. 또한 이것을 햇볕에 말리면 단단해진다. 우기도 지난 8월에 말똥을 주어서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 불을 피워 땔감으로 쓴다.
몽골에서도 초원에 산재해 있는 말똥을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제주도에서도 같은 습속이 전한다. 한편 말 관련 놀이 중에 소년들이 즐기는 말타기 놀이가 있다. 단순한 형태의 놀이로는, 길이가 약 2m쯤 되는 막대기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한 손으로 잡은 후에, 말이 뛰듯이 펄쩍 뛰면서 승마의 흉내를 낸다.
근래에 하는 말타기 놀이는 다른 형태를 지닌다. 9)말타기 놀이에는 이 밖에도 명절날이 되면 여러 아이들이 마을의 빈터 같은 곳에 함께 모일 수 있을 때에 오락 용구가 필요하지 않고 사람 수에도 제한을 받지 아니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 경기는 아이들을 먼저 두 편으로 나누어 가위 바위 보를 한 뒤에 진편이 말과 주인을 대신하게 되고, 이긴 편에서는 말을 타게 되는데, 한 사람이 담이나 둑 같은 곳에 등을 기대고 서면 진편의 한 아이가 그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디밀고서 엎드리게 되면, 그 뒤의 아이 역시 그와 같이 하여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긴 편의 아이들은 멀리서부터 뛰어와 그 위로 뛰어 올라 맨 앞의 아이가 진편의 말주인과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지게 되면, 진편이 말의 역할을 바꾸어 맡게 되는 그러한 놀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재래의 우리나라 민속놀이에 말타기와 관련된 놀이가 성행하게 된 데에는 외적의 침입 등에 의해서 항상 병마의 모습들을 익히게 된 세태(世態)와 더불어 교통수단의 중요한 역할 등으로써, 말에 대한 우리 민족의 친근감과 효용성의 높은 인식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편싸움의 형태를 지닌 아이들 놀이로 말과 기수의 모습을 본뜬 매우 역동적인 놀이이다. 따라서 말의 강한 모습을 통해 신체 단련 및 순발력을 기르는 놀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목마 타기 놀이는 주로 음력 정월에 하지만, 일년내 어느 때고 쉽게 할 수 있다.
특히 아무런 준비물 없이 사람의 등을 타는 놀이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놀이로 현재도 어린이들이 많이 하고 있다. 한편 나무를 이용한 목마놀이도 있다.
재래(在來)의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는 실내외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 용구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 산에서 나무를 떼어다 낫으로 정성스레 깎아 만든 팽이나, 엽전에 고운 색실(色絲)을 엮어 만든 제기 등이 오락의 주종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체로 지체가 높거나 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집안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오락 유희용으로 말의 형상을 나무로 깎아 만들어 타게 하였으며, 그것은 또한 어린 아이들의 승마 연습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한 목마는 지방에 따라 나무 대신에 대나무가 재료로 쓰이어 죽마(竹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목마 또는 죽마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극히 제한된 몇몇의 집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반 자제들의 경우에는 간단한 대나무 막대로 죽마를 대신하여 말타기를 하는 것이 예사였는데, 키의 두 배 가량 되는 대 막대를 두 다리 사이에 끼운 뒤, 두세 명의 아이들이 그 뒤에 함께 타고서 맨 앞의 아이가 대막대의 머리 부분을 잡고 말의 흉내를 내며 온 마을을 돌아다니곤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죽마(竹馬)를 함께 타던 어린 시절의 다정한 친구를 일컬어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성어를 쓰는 것도, 천진무구한 어린 시절을 동심의 세계에서 함께 뛰놀던 정겨움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대말타기는 어린이들이 참대, 나무, 회초리, 수숫대 같은 것을 다리 사이에 끼고 달리거나, 나무나 참대로 만든 긴 다리에 올라서서 걷는 놀이이다. 우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놀았다. 고구려 팔청리 무덤과 수산리 무덤 벽화에, 높은 대말을 타고 걷는 무습이 보인다.
특히 팔청리 고분에는 키만한 장대에 말을 묶고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허리를 조금 구부린 채 가슴을 펴고, 옆으로 내뻗은 팔 끝의 손을 위로 세웠으며, 다른 팔은 반으로 접었다. 수산리 벽화의 주인공도 두 팔을 벌려 춤을 춘다.
그 아래의 죽방울 돌리기와 수레바퀴 돌리기의 묘기도 볼거리이다. 오른쪽 사람은 무덤 주인공이다.『삼국유사』에도 “대말 타고 잎 피리 불며 놀던 아기, 하루아침에 어여쁜 두 눈 잃을줄이야. ”라고 읊조린 시가 있다.
고려말의 『목은집』에 죽마 기사가 실렸고, 16세기의 임제는 “옛 고향에 왔으나 죽마 타고 함께 놀던 동무들 간 곳 모르고, 반갑게 맞아주는 이 하나도 없다. ”는 시를 남겼다. 10) 대말타기에는 두 다리 사이에 말을 끼고 달리는 걸터타기와 나무 발 위에 올라서서 걷는 올라타기의 두 가지가 있다.
걸터타기는 지름 2센티미터, 길이 2미터쯤 되는 긴 참대나무 따위를 다리 사이에 끼고 끌며, 말을 탄 듯 노닐거나 뛰어가는 놀이이다. 앞에 말머리를 만들어 붙이기도 한다. 올라타기11)는 지름 4~5센티미터, 길이 1. 5미터쯤의 참대나무나 보통 나무막대기에 붙인 받침에 발을 올려놓고 거니는 놀이이다.
발받침은 바닥끝에서 20센티미터쯤 높이에 붙이며, 처음에는 낮은 데에 올려놓고 타다가 점점 높은 곳으로 옮겨가도록 서너 개 달기도 한다. 따라서 걸터타기는 어린이가, 올라타기는 어른이 즐기기 알맞다. 흔히 일정한 거리 다녀오기를 겨루지만, 뒤로 걷기․껑충껑충 뛰기․밀어 넘어뜨리기 따위도 벌이며, 편을 갈라 이어달리기도 한다. 올라타기 때 부르는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