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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2. 고대의 말 관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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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설화, 민요와 말

설화에 나타난 말은 다양하다. 우선 고대 문헌설화에는 말이 영험하고 신이한 능력을 지닌 동물로 나타난다. 따라서 앞날을 예언하는 동물로도 등장한다. 인간은 지상계에 살면서 천상계를 동경하며, 이 과정에서 신성한 말을 등장시켜 지상과 천상을 연결시켰다.

이런 점은 신화에 잘 나타나고 있다. 말의 영험적 성격은 이미『삼국유사』동이전의 동부여 관련 기록에 나타난다. 내용을 보면, 부루왕(夫婁王)은 늙도록 아이가 없어서 산천에 기원하고 오다가, 말이 큰 못의 바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다.

이에 왕이 이상히 여겨 돌을 들쳐보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애가 나온다. 하늘의 아들이라 여기고 데려다 기르니, 이 아이가 금와(金蛙)이다. 여기서 말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지해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언하는 신의 사자(使者)이야기는 박혁거세 신화에도 나타난다.

신라 6부의 촌장들이 알천(閼川)언덕에서 지도자를 기원하다가, 양산 아래의 나정(蘿井)이란 우물 옆에 이상한 기운이 비치고, 그곳에 백마 한 마리가 절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붉은 알이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이 알에서 혁거세가 깨어나게 된다. 역시 부루왕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말이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존재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은 백마라는 점이 특이하다. 따라서 백마(白馬)는 신과 가까운 존재로,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켜주는 신의 사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길조(吉兆)만이 아니라, 나라가 멸망할 때를 예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말이 왕의 승하 전에 무릎을 꿇고 슬피 울어, 위대한 인물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현존하는 은산별신제의 당(堂)신화에서도 말이 신선의 사자로 나타난다.

옛날 은산지방에 유행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이때 한 촌로의 꿈에 백마를 탄 신선이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백제 전사(戰士)의 원혼을 풀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로부터 별신제를 지내게 되었으며, 그 후 마을이 편안해지게 되었다.

여기서도 신선이 타고 다니는 말로 나타난다. 한편 그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별신제 행사의 행군시에 기마대가 등장한다. 곧 대장(大將)은 백마를 타고, 중군(中軍)․집사(執事)․비장(裨將)․통인(通引)이 일반 말을 타고 가장행렬을 한다.

따라서 당시 기마(騎馬) 부대의 모습을 재현한다. 근대까지 구전되는 아기장수설화에서는 천한 신분의 아기장수가 초인적인 뛰어난 능력을 펴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때 가해자는 부모, 관군, 외세, 이성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아기장수가 죽을 때 백마가 슬피 울고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비극적 영웅인 아기장수의 죽음과 백마의 죽음이 동일시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백마는 서민층의 위대한 인물로 형상화된다. 한편 민담인 나무꾼과 선녀이야기에도 천마가 등장한다.

나무꾼이 하늘로 올라간 아내인 선녀를 찾아서 하늘나라로 올라가 행복을 누리게 되었으나, 지상에 두고 온 노모가 생각나서 천마를 타고 지상에 내려오게 된다. 천마는 하늘의 선계와 인간세상을 왕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나무꾼을 천계에서 지상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나무꾼과 선녀이야기의 변이형으로, 일종의 지상회귀담 첨가형에 해당된다. 여기서 말은 하늘과 땅 사이를 마음대로 왕래한다. 말에 대한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민중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며 기후를 조절하는 신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용과 결합시켜 용마(龍馬)설화를 형성시켰다.

한편 의리를 지키고 보은(報恩)하는 말의 이야기도 전한다. ‘김유신과 천관녀’이야기에서는 김유신이 술에 취한 채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의 애마(愛馬)는 주인이 잘 다니던 천관녀의 집으로 간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잘못 헤아려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여기에서 김유신의 말은 주인의 뜻을 이미 감지한 충직한 말로 나타나지만, 김유신의 모친이 부정한 관계에 대한 강한 힐책으로 주인 대신 죗값을 대신 받는 동물로 등장한다. 한편 죽음으로 주인에게 보은한 말의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때 함경남도 보청에 사는 박장군은 여러 동지들과 전장에 나가 싸우다가 불행히도 전사한다.

이때 박장군이 탔던 말은 주인의 시체를 물고 집까지 찾아와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그리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거꾸러져 죽게 된다. 박장군의 가족들이 달려와 보니, 주인의 시체 앞에 죽은 말의 전신에 땀을 흐르고 있었다.

가족들은 그 말을 참으로 외로운 말이라고 하여 박장군 무덤 곁에다 묻고, 의마총(義馬塚)이란 비석을 세워 주었다. 또 화살보다 빠른 뛰어난 말이 주인의 오해에 의해 죽은 이야기도 있다. 태조 이성계는 궁술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다.

‘이성계와 치마대(馳馬臺)전설’은 이성계가 무술을 연마하던 함흥의 반룡산 기슭위 치마대 부근이 배경인데 이성계는 성질이 사나워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던 주인 없는 말을 성질이 온순한 명마로 조련하였다. 그는 활을 쏘면서 말과 시합을 한 후에, 화살보다 늦은 명마의 목을 베게 된다.

그러나 엉뚱한 화살을 잘못 알고 오해해서 뛰어난 말을 죽인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말을 후히 장사지내 준다. 그리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 주고 비각을 세워주었다.

이런 전설을 충남 부여군의 망진산(望辰山)의 말 무덤 전설에 나오는 백제의 장수이야기와 충남 홍성군의 금마면(金馬面)의 금마총(金馬塚)전설에 나오는 최영 장군 이야기에도 나타난다. 모두 뛰어난 능력을 지닌 명마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말 설화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말은 근면성과 민첩성, 왕성한 활동력과 빠른 주력(走力), 영리함과 빠른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말의 이러한 능력은 설화 속에서 더욱 강조되고 미화되며, 신이한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일상적인 것과 구별되는 특이성이나 쉽게 없어지지 않는 영속성을 지닌 동물을 신성시하는 민간의 심성에서 보면, 위와 같은 특성을 지닌 말은 당연히 신성한 동물이고, 신앙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동물이다. 한편 민요에도 말을 찬양하는 노래가 많이 나온다.

특히 명마에 대한 의식에 의해 천리마와 영마(靈馬)의 노래, 영웅의 말을 타고 달리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 평원지대에서 말을 타고 사랑을 나누는 남녀간의 사랑의 노래가 전해진다. 특히 말몰이노래가 반복음 위주로 되어 있는 노래는 제주도나 함경도 지역에 전하고 있다.

말은 동물 중에서 양기가 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민요에도 말의 강한 성적(性的)능력을 노래한 것이 있다. “달바자도 쨍쨍 울고/삼년 묵은 말가죽이/에용에용 우짖는다. ”는 노래를 보면, 봄을 노래한 것이지만, 실제로 죽은지 3년이나 된 말가죽이 신이 나서 소리를 낸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말의 양기는 죽어서도 아직 남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콩볶아 줄께 /베대쳐라”라는 민요가 있다. 이것은 소년들이 들에서 풀을 뜯으면서 남근(男根)을 흔들어대는 말의 모습을 보고 놀리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유독 말에게만 이런 노래가 전해지는 것은 강한 양기를 지닌 동물이란 인식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백마강 조룡대(釣龍臺)에 얽힌 전설은8)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함락시킬 무렵,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육․해군 13만 명을 이끌고 백제의 수도 부여를 함락시킨 뒤의 일이다.

웅장 섬세하고 화려한 백제의 궁전에서 당나라 오랑캐들이 기고만장 오만불손하게 놀고 있었다. 대왕포(大王浦)하류에 대기하고 있었던 당나라 병선 수백 척은 규암진(窺岩津)을 지나 낙화암(洛花岩)밑으로 집결하고 있었는데 이건 웬일인가?난데없이 태풍이 불어 휘말리는 강물의 풍랑에 수백 척의 병선은 산산조각이 나고, 타고 있던 당의 병졸들은 거의 죽고 말았다.

이 괴상한 돌발적인 치명상을 입은 소 정방은 황급히 막료회의를 열어 괴변 돌발의 원인을 물었던 바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것은 백제를 지키는 강룡(江龍)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낸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소 정방은 “그 용을 퇴치하는 방법은 없느냐”고 다그처 물으니까 그는 다시 말하기를 “용은 백마(白馬)를 좋아하니 백마를 미끼로 낚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소 정방은 쇠를 두들겨 큰 낚시를 만들고 굵은 철사를 낚시줄로 하여 백마를 미끼로 강 가운데 솟아있는 바위에 앉아 낚시줄을 길게 풀어 놓았다.

아!슬프도다. 강 속에 숨어 있던 용은 이 먹음직스런 백마의 미끼를 한 입에 삼키어 잡히고 말았다. 그 후 부여의 그 강을 백마강(白馬江)이라 하고, 그 백마로 용을 낚았던 바위를 조룡대(釣龍臺)라고 하였다. 1500년의 긴 역사와 더불어 낙화암 밑 맑은 물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 가운데에 조룡대가 있어 그 바위에 낚시줄을 잡아당긴 흔적이 역역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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