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승마(乘馬), 역마(驛馬), 거마(車馬)등의 교통용, 전마(戰馬)와 같은 군사용, 생산수단으로서의 농경용, 그리고 식용으로 사용되었다. 말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련되어 사용된 말갈기는 갓, 말가죽은 가죽신․주머니의 재료, 말 힘줄은 활의 재료인 조궁(造弓)으로 사용되었다.
말똥[馬-]은 종이의 원료와 땔감․거름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말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말이 가축화되어 인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던 것을 알 수 있는 말이 표현된 고고학적 유물과 청동제 말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신라와 가야의 고적유물,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도 다양한 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몽골과 같이 말이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인간과 생존을 같이 하는 존재로서 나타나지는 않으나, 말을 신성한 존재로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근래에는 말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군마로서 말의 기동력은 일찍이 중요시되었으며 이미 부여에는 명마가 있었다. 특히『삼국지』부여조6)에 보면, 음탕한 남녀와 시기(猜忌)가 아주 심한 여자를 죽인 후, 시체를 산 위에 두어 썩게 하는데, 시신을 찾아가고자 할 때는 소․말을 보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말이 이미 집안에서 사육되고, 매우 중요한 재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속에서 말은 고대로부터 신격화되어, 현재에도 서낭신이나 산신(山神)의 형상으로 민간신앙에 전승되고 있다. 민간에서 전승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대에도 말이 신성시되었다.
고구려나 신라의 고분 벽화나 가야의 기마인물토기(騎馬人物土器)에서 이런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무용총이나 삼실총의 벽화에는 하늘을 나는 천마상도가 그려져 있다. 또한 황남동고분의 천마도(天馬圖)는 말이 구름 위를 나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편 개마도(鎧馬圖)는 죽은 사람의 혼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다. 이것은 죽은 이가 공헌(供獻)하는 말을 타고 저 세상에 가기를 바라는 뜻7)이 내포되어 있다. 경주에 있는 천마총(天馬塚)의 천마상도는 백화나무 껍질에다 색채로 그린 그림으로, 말이 입에서 서기를 토하며 꼬리를 쳐들고 하늘을 힘차게 달리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미 삼국시대에 천마사상이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신격화되면서 마신(馬神)이 설정되기도 한다. 이것이 후대에는 민간에서 집행하는 제례에서도 채택되었다. 소사(小祀)는 삼사(三祀)중에서 대사(大祀)중사(中祀)다음의 마지막 의례인데, 여기에서 마신(馬神)을 위한 의례가 행해졌다.
신라 때에는, 대사는 삼산(三山)에 지냈고, 중사는 오악(五岳). 사해(四海). 사진(四鎭). 사독(四瀆)을 지냈고, 소사는 그 밖의 산천제(山川祭)를 뜻하였다. 그런데, 경국대전에 이르러서 소사에는 마조(馬祖), 선목(先牧), 마사(馬社), 마보(馬步)가 포함되었다.
이 4가지는 이미 고려 의종 때에 국가의식으로 제사한 기록이 있다. 마조(馬祖)란 왕마를 맡은 신이다. 마조는 천사(天駟)이며, 천사는 별의 명칭이니, 즉 방성(房星)을 뜻한다. 방성(房星)28수(宿)의 넷째별인데, 하늘의 중앙을 지나간다. 서울 홍인문 밖에 이를 모시는 제단이 있었다.
국가에서 국비로 마신(馬神)을 위한 제의를 거행하였을 정도로 중요시하였다. 한편 마보(馬步)처럼 재해를 주는 신에게도 의식을 올려, 그 폐해를 줄이려 노력하였다.
마신제(馬神祭)는 마조단에서 거행하였는데, 축장에 마조(馬祖), 선목(先牧)에는 ‘조선국왕’이라 썼으며, 마사(馬社)마보(馬步)에는 ‘국왕’이라 썼다. 신위(神位)는 남향으로 하고, 돼지머리를 놓으며, 사관(祀官)은 3품(三品)으로 한다.
의식은 유교식으로 거행하여, 현관 이 차례로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마신(馬神)이 설정되고 위하는 과정에서 직업적인 무인(巫人)에 의해서 제의가 이루어진다. 마신이 인간생활에서 중요했기 때문에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사제인 무자(巫者)가 굿과 제(祭)를 담당하게 되었다.
실제 고려 이후에 궁중에 승여마필 목장을 관장하는 관아로 태복(太僕侍)가 있었고, 충렬왕 34년(1308년)에 이를 사복시(司僕侍)로 고쳤다. 여러 관원이 있어 마정을 담당 하였는데, 이들은 마신을 제사하는 데에도 관여하였다. 그리고 마제의(馬祭儀)에 무인도 참여하게 하였다.
『시용향악보』에 군마대왕(軍馬大王)이라는 고려의 노래가 있다. 이것은 무격(巫覡)이 마군신[大王]을 제할 때에 부르는 굿 노래로 알려져 있다. 사설은 내용이 없고 음운(音韻)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마대왕을 비롯해 구천(九天), 별대왕(別大王)은 모두 반복된 음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군마(軍馬)는 그 역할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이를 대왕이라 하여 무신(巫神)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말이 튼튼하고 질병이 없이 번식하기를 빌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을 섬기는 무인을 청하여 제의를 담당하게 하였다.
마신 신앙은 국가나 민간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민간에서는 산신의 어마(御馬)로서 인식되기도 하였다. 현재 전하는 강원도 말 신앙의 경우를 보면, 그 형태가 철마(쳑馬), 와마(瓦馬), 석마(石馬), 토마(土馬)등으로 다양하다.
이곳에서는 말 신앙이 부락수호신과 결탁되어 재난이나 질병의 퇴치, 마을의 평안과 풍요기원의 의미를 지닌다. 한편 호환예방이나 서낭신의 어마(御馬)등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강원도 산간인 정선군과 평창군 일대에 철마, 와마, 석마, 토마의 형태가 나타난다.
따라서 말의 주술적인 힘에 의탁해서 아들 기원, 발복의 대상, 영혼의 운송자 등의 여러 형태로 봉안된다. 따라서 말은 곰, 용, 호랑이와 더불어 중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서낭신앙으로 마을의 수호신앙과 결탁된 마숭배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