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비교적 몸통이 짧은 정사각형 체형은 단거리마이고, 몸통이 긴 직사각형 체형은 장거리마라고 한다. 또는 단거리마는 앞가슴이 발달해 있고 허리도 크며 근육이 발달한 늠름한 체형인데 비해 장거리마는 날씬하고 유연한 체형이라고 한다.
말의 체형에서 적성을 구분할 수도 있지만 체형이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거리적성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어깨의 각도라고 본다.
♣ 가파른 어깨와 누운 어깨
어깨란 견갑골에서 대결절(어깨의 관절)부분을 일컫는다. 따라서 어깨 각도란 견갑골의 각도를 말한다. 그림 1-11과 같이 말의 견갑골은 보통 45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말 중에는 경사 각도가 큰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견갑골이 더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깨 경사가 급한 말을 경마관계자들은 어깨가 가파르다고 한다. 어깨가 누웠다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로 견갑골 경사가 45도 보다 작은 비교적 완만한 경우이다. 또는 보통 정도의 경사여도 어깨가 가파른 말과 비교해서 어깨가 누워 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견갑골의 경사 정도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지 않아도 외관상으로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그림1-11과 같이 기갑에서 견단까지 이은 선을 보면 알 수있는데, 이 선이 45도 정도라면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어깨 각도가 표준범위이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이 각도를 벗어난 말은 눈에 띄게 된다.
♣ 주행의 축은 어깨에 있다
어깨 각도를 중시하는 이유는 경주마의 주행의 축은 어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갑을 중심으로 한 어깨와 앞다리의 움직임이 주행 리듬의 근원이며 뒷다리는 이 리듬을 이용하여 몸을 앞으로 밀어내는 추진력을 만들어 낸다. 목도 이리듬에 따라 진자와 같이 움직여 뒷다리의 추진력을 증폭시킨다. 이런 구조로 말은 달리는 것이다.
이 구조 가운데 견갑골의 각도가 가파르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어깨관절에 있는 상완골의 각도가 넓어져 그만큼 앞다리가 앞으로 벌어지는 각도가 좁아지게 된다. 이 의미는 보폭이 좁아져 어깨에서 시작되는 걸음걸이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깨가 표준보다 누워 있으면 그만큼 어깨가 앞으로 벌어지는 폭이 커지므로 보폭은 넓어지고 걸음걸이가 비교적 느려진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깨 각도가 단순히 보폭을 규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깨와 앞다리가 주행의 축을 이루기 때문에 어깨 각도에 따라 달리는 패턴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 단거리 적성과 장거리 적성
어깨가 가파른 말은 보폭보다 다리의 빠른 움직임으로 속도를 내는 회전 주법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해서 자동차의 저속기어와 마찬가지로 출발점에서 효율적으로 속도를 올릴 수 있다.
그림 1-12아래에 있는 스프린터즈 S의 기록과 다카라wm카 기념(宝塚記念)24)경주의 (모두 최고 기록)기록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처음 1펄롱에서 1. 2초, 2펄롱에서 1. 9초의 차이가 난다. 이처럼 처음부터 최고 속도에 가까운 가속을 하는 데는 빠른 움직임과 강한 힘을 겸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어깨가 누워서 보폭이 큰 말이라도 출발할 때는 보폭을 좁게 하여 능숙하게 가속할 수 있도록 애 쓰지만 빠른 움직임을 장기로 하는 말을 따를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출발선에서 뒤쳐지게 된다. 단거리 경주의 경우 늦발주는 치명적이다.
지연을 만회할 틈도 없이 결승선에 도착해 버리기 때문에 어깨가 누운 말은 단거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그 유명한 메지로마크인25)도 깃카쇼(菊花賞)경주에서 우승할 때까지는 거리 때문에 좀처럼 승리하지 못하고 애를 먹었다.
그러나 회전 주법에는 체력의 한계가 있다. 저속 기어에서 계속 속도를 올리면 엔진 과열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거리가 길어지면 도중에 지쳐 버릴 가능성이 생긴다. 이것이 단거리마의 거리의 벽이다. 이렇게 되면 어깨가 누운 말이 훨씬 유리하게 된다.
비교적 움직임이 느려도 보폭의 크기로 어느 정도의 속도를 무리 없이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 장거리마의 주행은 모두 부드럽고 여유롭다. 따라서 어깨가 가파른 말은 단거리에 적합하고 어깨가 누운 말은 장거리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표준적인 어깨를 한 말은 그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혈통의 역사가 선택한 체형
그러나 처음 설명한 것처럼 단거리마와 장거리마의 특징은 어깨 각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단거리마의 체형은 목이 두껍고 짧으며 몸통도 짤막하며, 가슴과 허리 근육이 잘 발달한 크고 늠름하고 단단하다. 기질적인 면에서도 투지가 강하다.
한편 전형적인 장거리마의 경우는 비교적 날씬하고 길며 몸통도 길고, 어깨와 허리에는 필요 이상의 근육이 붙지 않아 날씬하고 유연한 체형을 하고 있다. 기질적으로 순하고 말을 잘 듣는다. 이러한 조건들은 각각의 주법과 적성거리에 딱 맞아떨어진다.
빠른 회전 주법을 위해서는 목과 몸통이 짧은 것이 어울리고, 저속기어를 풀 회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이 필요하다. 기질적으로 태평한 말은 경주를 제대로 끝낼 수 없다. 발주 직후부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해서 결승선까지 전력 질주하는 것이 단거리 경주이기 때문이다.
한편 장거리 경주에서는 큰 보폭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달리기 위해서 몸통이 긴 쪽이 유리하며, 무리 없는 주행을 실현하기 위해서 도 유연하고 절제된 근육이 적합하다.
그리고 장거리에서는 기수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도중에 긴장을 풀어가면서 달리지 않으면 끝가지 달릴 수 없다. 말을 어떤 페이스로 어디로 몰고, 어느 지점에서 돌진할 것인가 하는 경주의 전개 전략이 필요한 이상, 기수의 판단에 순응하는 순한 말이어야 한다.
단거리마와 장거리마의 이러한 요소들은 어깨 각도에 의해 전부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깨가 서 있어도 몸통이 길고 성격이 느긋한 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단거리에서 이길 수 없다. 게다가 거리가 길어지면 보폭이 좁은 만큼 불리하다.
이런 말이 이길 수 있는 경주는 없다. 즉 능력이 낮은 말이라는 것이다. 또한 능력이 없는 말은 종마가 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혈통의 역사 속에서 도태되어 갈 것이다.
♣ 미호노부르봉의 도전
미호노브루봉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세 때부터 전승을 올리면서 사쓰키쇼(皐月賞)에서 우승한 이 말은 더비에서도 당연히 인기가 가장 좋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마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미호노부르봉의 승리를 의심했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즉 거리의 벽 때문이었다.
미호노부루봉은 전형적인 단거리마 체형의 말로, 능력이 뛰어나 거리의 벽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사쓰키쇼(皐月賞) 2000m 경주가 한계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 가장 인기가 있던 이 말의 더비 제패는 일반 팬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경마관계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것은 더러브렛의 한계에 대한 격렬한 도전이었다. 그러면 깃카쇼(菊花賞)3000m 경주는 어떨까. 필자는 우승후보마로 점찍었다. 미호노부르봉의 도전에 걸어보고 싶었다. 결과는 2착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는 의견이 엇갈려서 조교사 도야마 다메오(戸山為夫)씨는 덴노쇼(天皇賞)26)3200m 경주에 출전할 것을 표명 했으나, 그 직후 미호노부르봉은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 말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과 함께 더러브렛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